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슬기로운 백수생활, 고미숙의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by ★에코지니★ 2020. 5. 27.
반응형

내 삶에 있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스승을 몇 명 꼽는다면,

#헨리데이비드소로우

#고미숙선생님 을 빼고는

이야기를 시작할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고미숙쌤의 생각은

여러 영역에서 소로우와 많이 닮아 있었고,

여기에 명리학적 개념을 더한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를 보고 난 뒤,

팬이 되었다.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크로버 1)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사주명리학과 오이디푸스』는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전작에 내놓은 ≪동의보감≫과 짝을 이루는 책으로, 전작은 ‘몸’에 대한 책이었다면 이번 책에서는 ‘운명’에 대하여 살펴본다. 천지만물, 곧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다 운명이 있다. 사주명리학은 타고난 명을 말하고 몸을 말하고 길을 말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초보적인 명리학의 지식을 통해 ‘운명의 지도’를 그릴 수 있도록 안내한다. 몸과 우주에서 비롯되는 자신의 운명은 무엇인지, 사주와 팔자는 무엇인지, 육친법은 무엇인지 등에 대하여 촘촘하게 풀어냈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새롭게 세워주며, 자신의 운명과 유쾌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도운 책이다.
저자
고미숙
출판
북드라망
출판일
2012.08.22

 

이 책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동안 풀지 못하고 고민만 하던 많은 숙제들에 대해

차츰 스스로 답을 찾아나갈 수 있었다.

그 얘기는 차차하도록 하고,

 


 

오늘 이야기하려는 책은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바로 이 책이다.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반양장)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연암의 청년 시기와 요즘의 청년들을 오버랩하며 연암의 발자취로부터 배울 수 있는 행복한 백수의 삶을 일깨우는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우리가 맞이해야 할 잉여 시대는 코앞에 왔지만 그것을 활용하며 행복하게 누릴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지금, 취업난에 내몰린 청년들과 함께 자립 공동체를 꾸리고 있는 저자가 그 안에서 얻은 노하우를 고전의 지혜와 버무려 전한다. 호사스러운 삶을 누리기에 충분한 배경과 능력을 가졌음에도 청빈한 삶을 택했던 연암. 돈이 없으면서도 호탕한 태도를 유지하며 제도 속 권력, 부의 유혹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될 줄 알았던 연암의 삶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저자는 일, 관계, 여행, 공부의 키워드로 청년의 삶을 구분해 연암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갔는지 따라가며 그의 당당한 자신감을 배울 것을 제안한다. 1장에서는 노동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밥벌이를 하고 자존감을 지킬 것인가를, 2장에서는 고립과 소외를 벗어나 어떻게 능동적으로 관계의 주체가 될 것인지 살펴본다. 3장에서는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여 여행이 어떻게 청년들의 욕망과 접속하게 되었는지, 4장에서는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공부라는 활동을 어떻게 일상과 결합할 것인가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백수 시대에 백세 인생을 살아가는 전략을 찾고 각자의 현장에서 각자의 속도대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전해준다.
저자
고미숙
출판
프런티어
출판일
2018.08.08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2018년 가을이었다.

개인적으로 그 당시는

회사에서 가장 힘든 시기로 기억된다.

자본시장의 최전방이라 할 수 있는

주식시장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던 내게,

 

2018년은 미중 무역분쟁발 주가 폭락으로 얼룩진,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고된 시간의 연속이었다.

물론 2020년 코로나발 글로벌 시장 폭락의 시기를

현업에서 경험하지 않았기에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만나게 된 이 책은,

남들 보기 번듯한 '정규직'에서의 탈주가

더 이상 두려움만은 아님을 내게 알려주었다.

그 계기로 10년 이상 다닌 회사에서

다른 방향을 볼 수 있는 용기를 얻었고,

다시 또 1년 반이 지나

육아휴직을 통해 '반백수' 상태가 된 이때,

내게 또 한 번의 울림을 안겨주었다.

또한 회사를 다니는 내내

비즈니스를 통해 세상과 밀접하게 소통할 수 있음을

정규직 상태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실제 세상과의 접속은

정규직의 눈으로는 순수하게 바라볼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1. '안정'이라는 허상

: 노동이 아닌 경제활동

 

우리가 생각하는 '안정'은 허상이다.

우리는 변화하는 상태를 불안정하다고 생각하지만,

'안정'이란 삶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잠시의 머무는 상태일 뿐

오히려 변화하는 순간들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우리는 10대는 입시생으로,

20대는 취준생으로,

운이 좋아 '정규직' 타이틀을 단 30대는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를 쓰고 '용'을 쓰면 살아간다.

이 모든 과정을

순탄하고 끈질기게 통과한 다음이래도

안정이란 결코 없다.

다시 또 살아남고, 지키고,

최소한 유지라도 하기 위해

우리는 비인간적 행위들도 서슴지 않는다.

정말이지 소유는 멈추는 법이 없다.

100만원 벌면 100만원에

1000만원 벌면 1000만원에 맞춰서 산다.

많이 벌기 위해 모두 다 애쓰지만,

다들 '벌이의 숫자' 그 자체에만 집중할 뿐,

왜 그렇게 벌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없고,

소유의 수준은 타인을 향해 있다.

그 안에 정작 자기 자신은 한껏 소외되어 있다.

반면 우리의 다크호스 '백수'는

 

'연봉과 연금에서는 배제되었지만

노동의 소외를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

 

노동이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내부적 동력에 기초해 활동한다는 것이다.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

정말이지 이 시대의 다크호스다.

코로나 사태가 아니어도,

어차피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 것이고,

상당 부분의 노동을 기계가 대처하게 될 것이다.

물론 안타깝게도 코로나로 인해

아마 이 현상은 더 가속화되리라고 생각한다.

또한 20세기에 강조되던 전문적 지식의 중요성도

이제 점점 더 줄어들게 될 것이다.

 

복잡한 공식, 수치 등등의 특정 지식들을

인공지능 대비 용량이 떨어지는 인간이

이제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그토록 당연하게 믿고사는,

자본주의 '비교우위'에서

인공지능 대비 인간의 지식이열위하지 않은가.

결국 대부분의 노동을 기계가 대체한다고 본다면,

정말이지 인간은 '정규직'이 아닌

자신의 처지와 능력에 맞는 '경제활동' 그 자체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이런 상황들이

우리 모두 처음 겪는 일이라 두려운 건 사실이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돈이 있으니.

그 잘난 '알파고'씨는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처럼 먹고 자고 싸면서 살지는 않으니까.

우리가 전문 지식의 영역은

인공지능에게 넘겨줄 수 있지만,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 그 자체는 변함이 없으니

새롭게 생겨날 '경제활동'들에 초점을 맞춰

'백수의 시대'를 현명하게 살아갈 준비를 하면 된다.

이미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새로운 삶의 영역들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2. 꿈이라는 허상

 

내 경험을 비추어 보면

10대, 20대는 물론이고,

30대의 대부분도 '꿈'이라는 신기루에 빠져있었다.

왜 우리는 꿈이라는 거대 담론에 짓눌려

소박한 일상을 누릴 권리를 빼앗기는가.

무엇보다 그 꿈의 끝에는

결국 화폐가 있다는 사실은 불편한 진실이다.

화폐에게 멈춤이란 없고,

증식만이 있으므로.

결국 꿈이라는 끝자락에 운 좋게 간다 해도

기다리는 건 'so what'의 허무함뿐이다.

 

 

생명은 기본적으로 욕망(혹은 에너지)의 흐름이고, 그것이 이리저리 흐르다 보면 뜻밖의 성취를 이루기도 하고 혹은 엉뚱하게 옆으로 새기도 한다. 뭔가를 이루려면 시절을 만나야 하고 시절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리 애를 쓰고 기를 써도 절대 불가능하다. 그게 인생의 이치다. 해서, 이루면 이룬 대로, 이루지 못하면 또 그것대로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데, 그게 아니라 꿈이라는 특정한 형식만을 고집한다면 이런 이치를 알아차릴 도리가 없다.

 

우리는 이루면 이룬 대로,

이루지 못하면 또 이루지 못한 대로

그저 삶을 삶으로 바라보고 즐기며 살 필요가 있다.

꿈은 꼭 이루어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루어진다 한 들 내 삶이 거기서 끝도 아니다.

오히려 어린 나이에 뭔가 성취한 사람들이

남은 시간들을 과거의 영광만을 그리워하며

더 쓸쓸하게 살아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제 꿈이라는 화폐의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이야기로 채워진 삶을 살길 바란다.

그것이 혹시 시절을 만나면

화폐로도 넉넉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고,

그게 아니면 좀 덜 넉넉하게 살면 된다.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타인에 삶에 크게 관심없다.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녹봉에

최소한의 노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을
독서와 글쓰기를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는 연암 박지원의 말이 되새겨지는 순간이다.

 

 


3. 백수의 자존감

: 소비와 부채로부터의 해방

 

번듯한 정규직의 생활에서 탈주를 상상하며,

가장 현실적으로 도움이 됐던 부분은 바로

소비와 부채로부터의 해방이다.

자립을 위해

우리는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돈을 버는 것 이전에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소비와 부채이다.

실제로

연봉의 수준이 곧 삶의 수준이라 생각하지만,

진정한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는

나의 소비수준의 통제가 먼저다.

살아가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자신의 소비 수준을 파악해 보고,

이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으면,

소비가 부채를 낳고,

부채가 다시 노동으로 나를 내몰아

'돈벌이'에 집착하게 되는.

다시 또 고된 돈벌이에

그 보상심리로 소비를 부추기게 되고

소비가 다시 부채를 낳는

이 악순환을 한번은 끊어낼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우리 사회가

집을 마련하는 것에 많은 비용을 요하지만,

집 한채 가지기 위한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팔아

쉴 새 없이 집 주위를 맴돌며 살지만

결국 집에 있는 시간은 없는 사람과,

내가 소유한 집은 없어도,

가벼운 몸집으로 여행과 이동을

기꺼이 맞이할 수 있는 삶.

무엇이 더 인간적인 삶인지 생각해 본다.

 


 

바야흐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백수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20세기 자본주의가 낳은

'정규직'의 프레임을 넘어서

백수의 삶을 기본으로, '어쩌다 정규직'을 경험하는

그런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든,

 

"오늘 하루를 온전히 집중하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사랑하길 바란다.

뭔가 이루면 이룬 대로,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은 대로."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