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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 (Intro) - 제주도의 역사

by ★에코지니★ 2020.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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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코지니'에요.

 

성수기를 앞두고,

지난 일주일 동안 제주도에 다녀왔어요.

 

회사 다닐 때는

2 ~ 3일 휴가를 내고,

휴일까지 껴서 쫓기듯 여행하고 돌아와

여독과 여행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여행 패턴을 반복해 왔는데,

 

처음으로 정말 여유 있게,

월욜 아침부터 금욜 오후까지

일주일 동안 일상 같은 여행을 즐기다 왔네요.

무엇보다 여행 앞뒤로도 준비하고 정리할 시간이 있어

너무 좋았어요.

 

블로그의 영향인지,

앞으로 글을 쓰며 살겠다는 소박한 다짐 때문인지,

여유로운 여행 때문인지,

그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기존과는 조금 다른 여행을 맛보았어요.

 

앞으로

지난 5일간 여정의 기록이자,

여행을 통한 인생공부에 대해,

조금씩 담아보려고요.

 

 


 


본격적인 여정에 앞서,

길 위에서 타자를 만나 스스로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기존과는 다른 시각으로 여행을 바라봤어요.

 

뭐가 됐든 중요한 건 떠나기 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죠. 유랑이 그저 여기에서 저기로 흘러가는 거라면, 그래서 공간은 끊임없이 변이 하지만 존재성은 달라지지 않는 거라면, 유목은 길 위에서 타자를 만나 스스로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죠. 그 차이가 바로 여행기의 핵심인 스토리텔링입니다. (고미숙 /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 p285)

 

우선

현장에 대한 시공간적 이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지척에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제주도에

한 번쯤은 가보셨거나

앞으로 한번쯤은 가보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동안 여행이라면,

응당 유명한 장소의 풍경과 먹거리에만

마음을 빼앗겨오지 않았나

문득 자아성찰을 하기 시작했어요.

 

또 코로나 이후,

어딘가를 간다는 그 행위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여행을 가게 된 제주도부터는

핫플레이스에 대한 검색 이전에,

그곳의 문화와 역사, 지역적 특색에 대해

좀 더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 깊이와 상관없이,

스스로 첫 시작을 응원하며,

부족하나마 첫 발걸음을 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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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은 제주도.

여러분은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사실 제주도는 빼어난 자연 속에

그 나름의 많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그런 곳이 아닐까 생각이 돼요.

 

지금처럼 교통이 잘 발달된 시기에는,

휴양을 위한 최고의 장소일 수 있지만,

교통수단이 발단하기 이전

비행기가 없고, 또 배로 이동해야 하는 그 시절에,

 

제주도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또 한반도 본토와는 동떨어져 있는 제주도는

언제부터 우리나라로 포함되게 되었을까요?

 

 

1. 우리나라 역사로의 편입 : 고려의 한 지방으로 시작했지만, 여전히 이질적인 너

 


우리나라 역사에서

제주도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쯤으로 알려져 있어요.

 

물론 당시만 해도

'탐라국' 이란 독립국의 형태로 존재했었고요.

삼국시대에 근처 국가인 백제, 신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과도 교류를 이어왔어요.

 

그렇게 우리의 탐라국은

고려 초기까지도 독립된 나라의 지위를 유지해오다,

고려 숙종 때(1105년)에 이르러서야

고려야 편입되기 시작했어요.

 

'탐라국'이란 독립국에서

고려의 한 소속인 '탐라군'으로

변화하게 되는 전환점이 되었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고려의 한 지방이 되었지만,

제주까지 통치가 어렵던 그 시기

탐라 왕의 지위는 그대로 두면서 나름의 지방자치가 이뤄져요.

 

그러나 이제 제주의 운명이,

본토의 움직임과 동떨어질 수 없겠죠?

 

원나라 침입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 결과 다양한 몽골의 흔적이 남아있어요.

말과 목장이 발달한 것도 이 영향이고요.

 

원나라 입장에서 고려 및 일본 등

주변 국가 칩입에 지리적으로 유용하고

중간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제주를

다양하게 활용했던 거죠.

 

 

2. 일본군의 진지 - 태평양 전쟁

 

제주도의 수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우리의 쓰디쓴 역사, 일제강점기에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기록하던 일본은,

결국은 미국과의 한판 승부를 벌이고,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죠.

 

일제강점기 전쟁 막바지에 접어들자,

일본은 본토를 지키기 위해,

연합군의 상륙을 막기 위한 진지구축의 일환으로

제주도에 진지구축을 해요.

 

물 밀듯이 밀려들어오는 일본군 숫자가

제주도민의 1/3에 육박할 정도였죠.

360여 개에 이르고 오름 중에

120곳 이상의 동굴진지가 구축되었고,

동굴진지에 고스란히 제주도민들이 동원됐어요.

 

 

3. 4.3 사건 - 정방폭포의 눈물

 

제주도의 아픔은 계속됩니다.

 

일본이 패망하고 광복은 맞이했지만,

좌익과 우익의 주도권 다툼과 이념 싸움이

아픈 역사를 만들어내죠.

 

광복을 맞이한 2년 뒤,

3.1절 집회에서 시작된 사고의 씨앗이

미군의 개입과 함께 폭동으로 규정되며

좌익세력 척결로 포인트가 이동해 버려요.

 

이 과정에서 주민과 경찰이 충돌하면서

우도 사건, 중문리 사건, 종달리 사건 등으로

희생이 이어지고요.

 

당시 남북 분단이 우려되는 가운데,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저지하기 위한

남로당의 투쟁과 시위의 전개가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되면서,

해당 세력의 공산주의 이념을 문제 삼으며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진압작전을 펼칩니다.

 

이 진압작전 과정에서

제주도의 인명 피해를 말할 것도 없고,

마을 전체가 없어지는 등 제주도의 수난이 이어졌죠.

 

계엄령이 해제되며 사태가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6.25가 터지면서 4.3 사건 관련자들의 즉결 처분되는 등,

4.3 사건에 따른 희생은 물론,

그 이후의 아픔도 안고 있죠.

 

아름다운 정방폭포는,

4.3 사건 당시 최대 학살터 중 하나로,

토벌대에 의해 살해된 주민들의 시체가

폭포 아래로 흘려보내졌다고 해요.

 

 


 

 

아름다운 섬 제주를 둘러싸고 벌어진,

지난 역사의 소용돌이.

시간은 흘러 제주는 그 아름다움을 모두 회복했지만,

그 안에 숨겨진 슬픈 눈물과 아픔을 보듬으며

그렇게 제주를 바라봐야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제주도를 다녀오니,

전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길 위에서 타자를 만나고,

또 스스로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그렇게 제주 여행길을 떠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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